오타주의.
시점변환주의.
그럼 즐감.
오늘도 여전히 엘사의 집에 온 난 부엌에 있는 식탁의자에 앉아 내가 해준 파스타를 먹고 있는 엘사를 보고 있다. 이건 엘사가 요리에 많이 서툴다는 것을 깨닫고… 거실소파에 앉아 슬라이스도 되지 않은 식빵만 뜯어먹고 있는 모습을 봤을 땐 정말 경악했었지. 그래서 그 후부터 잠시 끊었던 식재료사오기와 더불어 그녀의 식사담당이 되었다. 물론 식재료비는 그녀의 주머니에서 나온다. 여튼 이렇게 식사를 하고 있는 엘사를 보고 있으면 왠지 엄마가 된 듯한 기분이다. 처음엔 왜 남 식사하는 모습을 보고 있냐며 타박을 하던 그녀도 이제는 익숙해 졌는지 아무 말 없이 트레이드마크인 무뚝뚝한 표정으로 식사를 한다.
“아, 엘사 그거 알아? 요즘 역사저널프로그램을 보면 화언을 언급하지 않는 곳이 없어.”
엘사는 간단하게 고개를 끄덕이곤 식사를 이어갔다. 엘사는 그런 것이 아무렇지 않은가보다. 난 좀… 못마땅한 느낌이 드는데. 이번에 나온 엘사 프로즌의 신작 화언(花言)은 역사연애소설로 우리나라 근세시대중기쯤에 최초로 등장한 베타특성 여왕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 여왕은 우리나라의 희대의 폭군이라 평가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특히 그녀가 차기 여왕과 대신들의 반정으로 서거하고 난 후 유례없는 태평성대의 시대가 열리면서 폭군이란 이미지는 더욱 굳혀졌다. 그 차기 여왕은 진성오메가로… 이때 당시에는 형질에 대한 지식이 없어 진성인가 아닌가로 만 형질을 구분했다지. 여튼 역사가들은 이때부터 오메가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기 시작했다고들 한다. 그리고 폭군이 만약 나라를 잘 이끌어갔더라면 베타에 대한 인식도 바뀌었을 거란 말도 했었지. 역사를 배우면서 느끼는 것이 그나마 이 시대에 살아서 다행이라는 것이라 그들의 그 말은 좀 동의한다. 사설이 좀 길어졌지만 즉 화언은 그 폭군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차기여왕이자 사랑하는 이의 손에 죽음으로서 이야기는 끝난다. 그런 화언이 역사저널에 많이 왈가왈부되는 것은 바로 폭군에 대한 설정에 있다. 진성알파인 것을 숨기고 베타로 살아가는 여왕이란 설정과 어렸을 때부터 친구로 지내 훗날엔 연인사이가 되는 폭군과 차기여왕에 대한 설정. 그래서 화언의 폭군은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설계를 소리 소문 없이 진행시키는 설계자이자 일편단심의 사랑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표현하는… 분명히 따뜻함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신의 주변을 둘러싼 환경 때문에 만들어진 광기에 먹히지 않으려 차가운 이성 속에 그것을 숨기며 살아가는 진성알파인 여성이다. 물론 프로그램에서 관심을 가진 것은 그녀만의 설계에 있다. 몇 년 전 외국의학논문집에 발표된 극우성 알파만이 사용할 수 있다는 최면효과. 너무나 강한 체향 때문에 가능하다는 그것을 이용해 자신이 사랑하는 이를 지키고 선왕 때 이미 찌들대로 찌들어진 부정부패를 바로잡고자 직접 선왕인 아버지의 목을 친 그녀는 폭군을 자청해 최면을 걸어도 소용이 없을 것 같은 신하들은 가차 없이 배어버리고 나머지는 최면으로 다음을 예비해나간다. 그리고 그 설계 속에는 자신의 최후도 들어있었다.
“평소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그런 이야기가 떠오르는 거야?”
식사를 끝내고 접시를 싱크대에 놓는 엘사를 보며 나는 물었다. 도대체 그녀는 평소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래도 모르겠다. 드디어 그녀의 작품들을 다 읽었는데도 모르겠다.
“…여러 책이나 논문 등을 읽다가보면 문득 이야기가 떠올라. 그것을 바탕으로 글을 썼었어. 하지만 이번 건 좀 달라.”
말을 마친 엘사는 어느새 내 앞으로 와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는 고개를 들어 그녀와 눈을 맞췄다. 무뚝뚝한 눈은 여전히 선잠만 자는지 피곤해보인다. 그럼에도 유지되는 아름다움이라니 반칙도 이런 반칙이 없다.
“다르다니 어디가?”
“화언은 이야기는 금방 떠올랐고 자료도 찾았지만… 바로 글로 진행시킬 수는 없었어.”
의외다. 벨의 말에 의하면 엘사는 어느 정도 구체적인 이야기가 떠오르는 즉시 그에 맞는 자료를 찾고 며칠 밤을 세서 글을 쓴다고 했다. 늘 멍 때리 듯 노트와 펜을 잡고 구상하던 그녀라서 그렇게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나에게도 그녀는 처음엔 교과서에 쓰여 진 그대로의 폭군이었어. 그래서 그에 맞는 자료를 찾아 문학사와 그 시대의 고전문학들을 봤지. 역사평론이나 논문의 내용은 다 거기서 거기였거든. 그런데 거기서 태평성대였던 이전부터 백성들은 그것을 노래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 거야. 처음에는 반어법인가 싶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반어법이 아닌 것 같더군.”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접근할 수도 있구나.
“그때부터 그녀는 정말 폭군인가라는 의문이 들었지. 그와 더불어 네겐 미안하지만 진성오메가였던 그 여왕은 어떻게 태평성대를 이루었는지도 의문이 들더군. 교과서나 역사책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자세히 나와 있지 않았으니까. 갑자기 태평성대가 찾아왔다는 느낌이었지. 거기까지 생각을 이어가자 문뜩 이런 생각이 든 거야 그 폭군이 태평성대를 설계한 것은 아닐까하는. 그리고 거기까지 생각해낸 이야기는 2년 동안 정체되었지.”
“2년 동안이나?!”
엘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왜?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를 보고 있는 시선을 유지했다.
“사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그녀와 내가 닮았다고 느끼고 있었어. 그래서 화언의 폭군은 진성알파임을 숨긴 베타여왕이 되었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왜 자신이 설계한 태평성대를 차기여왕에게 넘겼는지는 모르겠는 거지… 너를 만나기 전까지 말이야.”
말을 흐린 그녀가 나를 보며 미소 지으며 다음 말을 이었다. 요즘 들어 자주 보는 미소이것만 지금은 얼굴에 열이 오른다. 꼭 고백을 들은 느낌이다.
“너를 만나고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그녀도 이런 감정 이었을까하는 생각이 들더군. 그래서 그녀가 태평성대를 차기여왕에게 마지막 선물로 준 것이 아닐까하고. 그래서 그 둘의 관계에 관해 조사를 하고… 드디어 글로 쓸 수 있게 된 거야. 그리고…”
엘사가 얼굴을 옅게 붉히며 괜히 목을 가다듬었다.
“읽어봐서 알겠지만 그래서 이번 책 제목이 화언(花言)인거야. 역사소설보단… 연애소설에 가깝지. 역사저널에서 왈가왈부하는 것이 우스울 정도로. 분명 마무리할 때쯤엔 소설은 소설일 뿐이라며 어물쩍 넘겼겠지.”
음… 가끔 엘사는 소설을 쓸게 아니라 어디 가서 돗자리를 펴야한다고 생각한다. 어쩜 그렇게 족집게 인건지. 하지만 지금은 그것을 신경 쓸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나는 빵끗 미소가 지어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화언에는 우리가 함께하면서 했던 행동들이 들어가 있었다. 가령 꽃말 맞추기 게임이라던가 서로의 체향으로 꽃 이름과 꽃말을 맞추는 장면이 그러했다. 그 외에도 멀리 떨어지게 된 후 공주가 된 폭군이 차기여왕에게 자신의 사랑고백을 담은 꽃다발을 보내는 장면도 있었다. 우리는 만난이후 그렇게 멀리 떨어진 적이 없어서 그럴 일은 없지만 정말 낭만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끝은 낭만적이지 않았다.
“왜 그런 결말을 생각해 낸 거야?”
“폭군의 결말은 역사에 남아있는 거니까.”
내 질문에 대답한 엘사의 눈에는 아무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사랑해… 내 유일한 사랑.’ 화언에서 나오는 폭군이 사랑하는 이의 검에 찔려 최후를 맞이할 때 한 그녀의 마지막 고백이자 유일하게 말로 한 솔직한 고백이다. 그녀는 이 날을 위해 그 많고 복잡한 설계를 한 것이다. 폭군의 정체를 알게 되어 죽이는 것을 망설이고 있는 사랑하는 이를 폭군은 체향을 이용해 자신을 죽일 것을 종용한다. 그리고 모든 설계가 완성되고 이제 눈을 감으면 뜰 수 없다는 것을 예감한 그녀가 처음 꺼낸 말인 것이다. 그리고 곧바로 폭군은 그녀에게 최면을 건다. ‘짐과 함께했던 모든 것들은 잊으라. 네 눈앞에 있는 이는 사리사욕에 눈먼 폭군일 뿐이다. 그리고 그대는… 그대가 죽는 순간까지 행복해야해.’ 이 말을 눈을 감고 들은 차기여왕은 눈을 뜨는 순간 폭군의 말처럼 그녀와 함께한 모든 것을 잊는다. 그리고 폭군에게 박은 검을 뽑고 폭군은 희미한 미소를 띠며 눈을 감는다. 이것으로 화언은 끝난다.
“정말 어디까지나 역사가 그래서 그런 거지?”
마지막 장면만 생각하면 불안해진다. 엘사와 화언의 폭군은 너무나도 닮았다. 엘사는 대답 없이 그저 나를 보고만 있다. 그것이 불안을 가중시킨다.
“그런… 거지?”
불안함에 다시 한 번 묻는다. 그제서야 엘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그렇겠지. 괜한 걱정인 것이다. 불길한 생각은 빨리 털어버리는 것이 좋다. 나는 그것들을 떨치고자 괜히 화제를 돌렸다.
“오늘 파스타는 어땠어?”
“맛있었어.”
나는 미소를 지으며 엘사를 끌어안았다. 그녀가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이것도 그녀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다. 그리고 서늘한 손이 닿는 것이 기분 좋아서 나도 좋아한다. 그래 우리에겐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어. 나는 그렇게 믿기로 했다.
오늘은 아렌델출판사창립파티가 있는 날. 이번에도 어김없이 최상급호텔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음식과 대화를 즐기고 있다. 아빠는 파티만 계획하면 꼭 장소는 최상급호텔로 잡는다. 놀 때는 확실하게 놀고 일할 땐 확실하게 일하자가 아빠의 신조 중 하나이다. 다른 하나는 인제는 놓치지 말자지. 덕분에 엘사의 대학문제는 진즉에 해결된 것이지만. 그러고 보니 여기에 엘사도 왔을 텐데… 아! 찾았다. 백금발은 틀어 올리고 교복을 입은 엘사는 구석에 배치된 의자에 앉아있었다. 나는 그녀의 무뚝뚝한 눈에서 시큰둥함을 읽었다. 어지간히 파티가 맞지 않나보다. 나는 무알콜 샴페인을 두잔 들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엘사.”
매일만나면서도 장소가 장소인지라 반가움을 미소에 담고 그녀에게 샴페인을 건네주었다. 엘사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샴페인을 받았다.
“파티에 참여한 소감은?”
“다신 안와.”
역시 그렇게 말할 것 같았다.
“그런데… 파티에 입을 만한 옷이 없는 거야?”
“없기도 하고 학생에겐 교복이 정장이기도 하고.”
나도 가정시간에 그렇게 배우긴 했지만… 이런 파티에 교복을 입고 오는 사람은 엘사 뿐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우리학교교복은 색도 흰색과 짙은 남색으로 되어있고 차분한 느낌이 나는지라 나름 괜찮은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이것도 엘사라는 명작에 가까운 옷걸이의 효과일지도…
“아, 아빠는 만났어?”
엘사는 고개를 가로젔고는 샴페인으로 목을 축였다.
“내가 만나게 해줄까?”
“아니, 만날 때 되면 만나겠지.”
“엘사… 우리아빠는 사장님이야… 그러다 돈줄 끊기면 어쩌려고.”
물론 인제를 사랑하시는 아빠가 그럴 일은 없겠지만. 엘사는 뭔가 고민하듯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하지만 난 사람자체를 만나는 것이 별로라… 그건 사장님도 예외는 아니거든.”
엘사가 말을 마치고 남은 샴페인을 비워냈다. 뭐라 말해야하는 상황임은 분명한데 말을 못하겠다. 그녀가 사람을 멀리하는 이유를 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역시 독점욕이 조금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을 독점하고 싶은 마음이야 당연한 거지만 이건 아닌 것 같은데…
“딸! 여기 있었구나.”
“아빠!”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아빠가 서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아빠에게 다가가 안았다. 그럼 아빠도 보답하듯 따뜻하게 안아주신다. 이것은 우리 집의 룰이랄까 어디에서 만나든 밖에서는 몇 분전에 함께 있었어도 가벼운 포옹으로 맞이한다.
“파티는 즐길 만 하니?”
“내, 늘 그렇듯 즐기고 있었어요. 참, 아빠가 그렇게 만나고 싶었던 엘사가 왔어요.”
나는 아빠의 품에서 나와 엘사를 소개했다. 어느새 일어난 그녀는 아빠에게 정중하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엘사 프로즌입니다.”
“오! 엘사 보고 싶었단다.”
아빠가 감격에 겨워하며 그녀를 강하게 안았다. 나는 엘사의 눈에서 당황을 읽었다. 저절로 웃음이 난다. 포옹을 푼 아빠가 이번에는 그녀를 이리저리 관찰한다. 그리곤 뭔가를 알아낸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신다.
“전체적인 외형은 이둔을 닮았구나. 머리색과 그 감정을 알 수 없는 눈빛은 아버지를 닮은 건가?”
“어머니께선 그렇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구나. 어쨌든 반갑다 엘사. 내가… 아니지 우리부부가 널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몰라. 안나에게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둔은 우리부부의 둘도 없는 친구였단다. 그녀가 그렇게 간 것은 슬프고 유감스러운 일이야.”
엘사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보았다. 그녀가 순간 들어난 슬픔을 바로 감추는 것을.
“음… 널 보는 것은 네가 태어났을 때 이후로 처음이구나. 사실 이둔이 널 낳을 때 내 아내가 도와줬거든.”
“안나에게 들었습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아빠를 바라봤다. 아빠는 나를 따라 미소를 지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리곤 다시 시선을 엘사에게로 옮겼다.
“그때 나도 같이 갔었거든. 그래서 갓 태어난 너를 만났지.”
“그렇군요.”
“아내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걸. 급한 일이 생겨서 못 왔단다. 널 만났으면 분명 좋아했을 텐데. 이둔도 참 그렇지, 왜 혼자 우리를 만나러 왔었는지. 같이 왔다면 좋았을 것을. 올 때 마다 네 이야기를 하면 좀 더 있다가라는 말만 했었지. 아직은 때가 아니라면서.”
엘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뭔가 생각에 잠긴 것 같았다. 그것마저도 흐뭇하신 아빠는 엘사만 바라보다가 뭔가를 떠올린듯한 표정을 지으시더니 내 얼굴을 잡고 엘사에게 들이밀었다. 나는 가까이서 본 엘사의 눈에서 의문과 당황을 봤다.
“이 아이 이둔을 닮지 않았냐?! 이 눈도 그렇고 머리색도 그렇고 말이다. 특히 미소를 그렇게 빼닮았지. 이둔의 딸도 아니면서 말이다. 그게 실은 다 내 아내 클로에의 태교덕분이지. 매일매일 일정한 시간을 정해서 이둔의 사진을 뚫어지게 쳐다봤거든 우리가 처음 만났던 학창시절 밝게 웃는 이둔의 사진을 말이야. 그 결과물이 이 아이지.”
“그렇군요.”
그녀가 나를 보며 미소 지었다. 나도 따라서 미소 지었다. 방금 아빠의 말은 처음 듣는 것이었다. 그런 비밀이 있는 줄은 몰랐다. 아빠가 우리 둘을 흐뭇하게 바라보신다. 그리곤 맘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신다.
“내가 최근에 벨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는데…”
“사장님!”
멀리서 비서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빠는 아쉽다는 표정을 하며 내 얼굴에서 손을 놓았다.
“참 사장도 할 짓이 못돼. 그럼 엘사 다음에 시간이 되면 우리 집에 놀러오렴.”
“그거 좋네요! 엘사 어때?”
우리부녀를 잠시간 바라보던 엘사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아… 난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좀 더 일찍 초대했으면 방학 때 데려 올 수 있었는데. 아쉽게도 이틀 후면 개학이다.
“그럼 그때 보자꾸나.”
아빠는 엘사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주시고는 비서에게로 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엘사가 뒤돌아서 자리를 떠나려고 한다.
“어디가?!”
“…화장실.”
엘사는 뒤돌아보지도 않은 체 대답을 하고 자리를 떠났다.
역시 그녀는 빛 속에서 사랑받는 사람이다. 사이좋은 부녀의 모습에선 따뜻함이 저절로 느껴졌다. 그리고 역시 그녀에게 이기적인 고백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이미 두 번이나 관계를 가졌으니 내가 후회하는 것 자체가 그녀에게 상처가 되는 거겠지만… 죽는 그 순간까지 곁에 있어줬으면 하는 생각과 함께 하루빨리 나 외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내 곁에서 멀어졌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그녀에겐 내가 있는 곳이 어울리지 않으니까. 안나에게는 화장실에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바람을 쐬고자 밖으로 나왔다. 이미 어두워진 하늘엔 보름달이 떠있었다. 이런 날이면 화언의 폭군은 사랑하는 이와의 추억을 되새기며 그녀를 그리워하곤 했다. 그리고 달이 없는 밤 몰래 궁에서 나와 그녀를 만나 서로만의 사랑을 속삭이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임을 알면서도 키워나가는 폭군의 마음은… 내 소유욕의 결정체이다. 안나가 알아줬으면 하면서도 물라줬으면 하는 감정이다. 모순,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부터 서서히 자란 그것은 아마 내가 죽는 그 순간까지 들러붙어있겠지. 화언의 폭군 안에 서서히 자라난 광기처럼 말이다. 그래서 그런 설계를 진행시켜나간 것이다. 그나마 남아있는 이성마저 광기에 먹히기 전에 죽을 수 있도록. 화언에 관련해 마지막으로 한 안나의 질문에 재대로 대답할 수 없었다. 그저 그녀의 불안을 조금이라도 떨쳐주고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끝으로 화제를 돌린 그녀에겐 미안할 뿐이다. 가을이 오려면 아직 멀었는지 밤이 되었음에도 좀 후덥지근하다. 그냥 돌아가는 것이 좋을 것 같군. 호텔 안이 더 시원하겠어. 파티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뒤를 도는 순간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을 봤다. 나와 같은 머리색을 가진 그는 호텔지배인과 대화를 나누다가 호텔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그때처럼 서로를 감정 없이 쳐다보았다. 잠시간 흐른 침묵은 그 사람이 입을 열면서 사라졌다.
“TV에서 네 책에 대해 말이 많더군.”
그의 입이 비열하게 올라가며 눈에는 가소로움을 담겼다. 그리고 자랑하듯 체향을 내뿜었다. 그런 그를 아무반응 없이 올려다봤다. 장례식이후 처음이라 그런지 고개를 많이 올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묘하게 신기했다.
“쓸데없는 것만 물려받았어…”
말을 흐린 그가 내 옆으로 스치듯 지나가며 최후의 말을 건넸다.
“그녀가 죽은 이유… 그건 너 자체다.”
나는 뒤를 돌아 그가 유유히 사라지는 것을 봤다. 안나 아렌델… 그녀가 보고 싶어. 그 생각에 미치자마자 나는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왜지? 그냥 파티장으로 가면 그녀가 있을 텐데 그녀는 어머니가 아니니까 아무 일 없이 파티를 즐기고 있을 텐데 벌써 내 곁에서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드는지 초조하고 불안하다. 정문과 파티장과의 거리가 이렇게 멀었던가.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안나… 안나 아렌델…
“엘사?!”
귓속으로 들어온 그녀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안나가 화장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찾았잖아. 화장실에 간다해서 와봤더니 보이진 않고…!”
진짜다. 혹시나 해서 끌어안은 그녀는 안나 아렌델이 틀림없다. 품안 가득히 느껴지는 따뜻함은 그녀가 분명함을 말해주고 있다.
“엘사…?!”
그녀를 더 느끼고 싶어서 입을 맞췄다. 위아래 할 것 없이 그녀의 입술에서 열대과일 같은 달콤함이 느껴진다. 한참 입술만 빨고 핥다가 혀를 넣어 그녀의 입안 전체와 혀를 느낀다. 맞물린 입안에서 그녀의 신음소리가 뭉개진다. 저절로 안고 있던 팔에 힘이 들어간다. 그녀가 힘들어하는 것을 알면서도 멈추고 싶지 않다. 그렇게 한참을 배려 따윈 상관하지 않고 그녀를 느끼다가 입을 때었다. 서로의 타액으로 번들해진 그녀의 입술이 살짝 부어올랐다. 나는 혀로 그녀의 입술을 살짝 핥고는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맞닿은 서로의 가슴에서 누구의 것 할 것 없이 빠르게 뛰는 심장박동이 느껴지고 귓가엔 그녀의 숨 고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살아있다. 당연한 것이 것만 새삼 다행이라 생각했다.
“엘사, 괜찮아?”
숨을 겨우 고른 그녀의 목소리에 걱정이 담겨있다.
“안나…”
“안나 어디 있어?!”
“아, 벨이다. 날 찾고 있나봐.”
그녀가 나를 밀어낸다. 나는 팔에 더욱 힘을 주어 안았다.
“엘사 숨 막혀… 나 가봐야 해.”
“가지마.”
“엘사?”
“아무대도 가지마. 넌 영원히 내 곁에 있어.”
순간 나 자신에게 어이가 없어져 웃음이 나왔다. 영원이라니. 세상에 그딴 건 존재하지 않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내가 그녀에게 그런 말을 꺼냈다. 왜 일까? 분명 그 사람이 말한 그녀는 어머니인데… 왜 난 네가 사라질 것만 같아 너를 찾고 지금도 이렇게 놓고 있지 않은 것인지. 혼란스럽다. 나는 그녀를 놓아줘야하는 사람인데…
“괜찮아, 엘사. 내가 네 곁을 떠날 리가 없잖아.”
분명 압박에 숨이 막힐 텐데 그녀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며 내 등을 토닥인다. 왜 일까? 그녀는 그저 말을 하고 내 등을 토닥여줄 뿐인데. 안심이 된다. 저절로 팔에 힘이 풀린다. 나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밝게 웃고 있었다.
“미안해.”
“괜찮아. 이제 진정됐어?”
그녀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서도 묻지 않는 그녀가 고마워서 답례로 미소를 지었다. 최근에 느낀 것인데 그녀는 내 미소를 좋아하는 것 같다.
“같이 들어가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를 품에서 놓아주었다. 그리고 그녀가 내민 손을 잡고 피티 장소인 연회장으로 향하려는데 안나가 발걸음을 멈춘다.
“왜 그래?”
“저기에…”
그녀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지만 아무도 없었다.
“잘 못 봤나봐. 가자, 엘사.”
우리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2학기가 시작 된지 일주일이 지났다. 개학과 동시에 다시 작업실에서의 자취를 시작한 엘사를 만나고자 오늘도 안나는 종례가 끝나자마자 도서실이 있는 학교 건물로 향한다. 하지만 도착한 곳은 인적이 드문 건물 밖 구석이었다. 방학식날 있었던 일 이후로 건드리지 않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보다. 하지만 이번엔 좀 다른 점이 있었다. 바로 한스의 심복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한스 혼자서 학교건물을 나서는 안나를 낚아채서 이곳으로 데리고 온 것이다. 당장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은 안나지만 두 팔로 벽을 짚어 가두어둔 탓에 그저 기회를 보며 그를 노려볼 수밖에 없었다. 한스를 비릿한 미소를 띠며 안나를 내려다봤다.
“이번에도 그 빌어먹을 교육인가요?”
“하하! 이봐, 나도 취향이 있고 나름 배려라는 것도 할 줄 아는 사람이야. 두 번이나 실패한 사람은 거들떠도 안본다고.”
“그럼 왜?!”
“하긴 생각해보면 금방 답이 나오는 것을… 너 엘사 프로즌과 꽤나 각별한 사이가 된 것 같더라. 호텔에서 진하게 노는 것을 우연히 봤거든.”
안나는 그날 느꼈던 인기척을 기억해냈다. 그리고 의문을 느꼈다.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
한스의 미간이 한없이 구겨졌다. 그는 누가 봐도 화가 났음을 드러내고 있다.
“무슨 상관?! 그년 때문에 내가 아버지께 깨진 게 한두 번이 아니야! 애초에 여기보다 더 좋은 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아버지가 녀석이 거슬려서 날 여기에 처넣었다고 알아?! 아버지는 왜 그딴 베타 년을 신경 쓰고 있는 것인지! 덕분에 큰 연회에 갈 때마다 별것도 아닌 녀석들에게 조롱당하는 것도 이젠 지긋지긋하다고!”
안나는 깜짝 놀라서 눈을 크게 뜨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번이 세 번째 잡힌 거지만 이렇게 소리 지르는 한스는 처음 봤기 때문이다. 얼굴을 아무리 험상궂게 구겨도 나름 차분하게 말하는 그였다. 그만큼 한스는 엘사 프로즌을 증오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입꼬리가 비열하게 올라간다.
“하지만 그것도 이젠 끝이야. 아무리 감정 없는 년이라도 좋아하는 사람이 사라지면 충격이 크겠지. 드디어 그년을 밟을 기회가 온 거야.”
그의 손이 안나의 턱을 우악스럽게 잡고 억지로 입을 벌렸다. 그리고 남은 손으론 주머니에서 약병하나를 꺼냈다. 안나가 전에 봤던 병과는 색이 달랐다. 뭔가 불길한 느낌을 받은 안나는 고개를 틀며 몸부림쳤다. 하지만 정말 작정하고 달려드는 사람의 힘에서 벗어나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안나의 입안으로 정체모를 액체가 들어갔다. 그녀가 액체를 삼킨 것을 본 한스는 턱을 잡았던 손을 놓고 한걸음 물러났다. 안나는 액체 중 일부가 기도로 들어갔는지 고개 숙이고 기침을 했다.
“칼춤엔 칼이 필요한 법이지.”
한스는 안나의 손에 과도를 하나 쥐어줬다.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려는 순간 저절로 몸이 굳는 것을 느꼈다.
“이번엔 무슨 짓 한 거야?”
허스키하면서도 차가운 목소리. 겨우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린 한스의 시야에 아무감정도 알아볼 수 없는 눈을 한 엘사 프로즌이 들어왔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드디어 썼다!
이번엔 현퀘와 더불어 어떻게 써야할지 고민하다 늦어짐. 미안허이.
사실 다음도 걱정이여…
이번에도 봐주신 님들에게 감사.
뺴애애애애애애애애애액 꽃말!!!!!!!!!!!!!! 선댓
크…. 엘사소설 안에서 폭군이랑 엘사가 많이 비슷한데 자기이야기를 조금 풀어쓴걸까? 근데 왜 새드엔딩이요?ㅜㅜ 설마 자신과 안나도 그렇게 끝날거라고 생각하는건 아니겠지?ㅜㅜ 하면서 징징거리려고 했는데 엘사가 다 설명해줌잼ㅋㅋㅋㅋㅋㅋㅋ
이번 엘사의 책은 안나가 있음으로서 완성된거네 ㅋㅑ~~~~~~~ 멋있다. 근데 폭군 개찌통ㅜㅜ 마지막에 가서야 고백하면서 그것도 다 잊으라니.. 시부랄 존나 소설내용 얘기해주는데 그부분에서 찌통이 몰려온다. 그리고 엘사가 안나질문에 어물쩡 넘어간것도 불안해ㅜㅜ 엘사 이제야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나서 행복해지나 했는데 뒤가 구려오잖아ㅜㅜ 그리고 터진 한스개새끼… 안나한테 무슨약을 마시게 한거야 저새끼 진짜 처음나올때부터 맘에 안들었고 숨쉬는거 자체가 맘에 안듬 부들부들 한스새끼가 들려준 칼때문에 두번 부들부들.. 엘사 행복하게 해주세요ㅜㅜ
감동. 정말 감동함!
이렇게 긴 뎃글 처음 받아봄.
고마워! 다음편도 열심히 쓸게.
참고로 글쓴이는 해피엔딩을 좋아해.
그 환각약인가 그건가보네 한스새끼 참 징하다
한스새끼를 주깁시다
저 약이 이둔님이 마셨던 거라면 한스를 주깁시다^오^ 씨벌롬 후지산에 처박아버리고싶다
달달할줄 알고 보기 시작했더니 이 무슨… 안돼 새드라니 ㅠㅠㅠㅠ 행복해질줄 알았는데 으앙 ㅠㅠㅠ
한스 시빌 무슨 짓을 저질른거냐!